고유섭 평전 : 한국미술사의 선구자 - 이원규 지음

gold iris 2024. 3. 26. 07:20

2024.03.25.
친구가 선물해준 책입니다. 제가 좋아할 것 같아서 샀다면서요.
박물관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한국미술사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부산의 대학이나 방통대에 한국미술사 전공이 있으면 대학이나 대학원에 다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적당한 것을 찾지 못했고, 그런 마음은 그냥 주저앉았지요.
이런저런 한국미술 관련 책을 보면서 우현 고유섭의 이름은 인지했으나, 평전을 읽어볼 생각은 못했는데, 친구 덕분에 고유섭 평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천 출신이라 지금은 그의 생가 근처 도로를 우현로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종각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 내려서 통학을 했었습니다. 집이 조계사 앞이었거든요.
우현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다녔는데, 그 자리가 지금의 조계사랍니다. 그래서 우현은 제가 다닌 고등학교 근처의 (우현의) 집에서 보성고등보통학교(조계사)까지 통학을 했습니다. 54년의 차이는 있지만, 우현과 저는 거의 같은 경로로 통학을 했더군요. 웬지 감격스러움이... 그분도 그 길을 다녔다니...
우현은 1905~1944년 39세의 짧은 생을 살았습니다. 그것도 일제강점기에서.
술과 스트레스로 인한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약관 28세에 개성부립박물관장이 되었고, 많은 연구와 저술과 강의를 했습니다.
그가 명명한 "분청사기"는 아직까지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입니다. 최근에는 "분청자"라고 써야한다는 논의가 있는데, 저도 분청사기보다는 분청자가 일반인들에게도 더 쉽게 인지될 것같다는 생각입니다.
우현은 일제강점기의 열악한 한국미술사의 불모지대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크나큰 한 획을 그은 분입니다.
우현이 남들만큼 살아서 독립 이후까지 좀 더 오랜시간의 연구활동과 후학을 길렀다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기껏해야 저는 '분청사기라는 단어를 만든 분이 우현 고유섭이다'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평전을 읽고 우현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덕분입니다.
감사한 것이 많습니다.
우현 선생께도 감사하고, 퇴직 후 즐겁게 박물관에 봉사활동 다닐 수 있는 것도 감사하며, 친구가 이런 좋은 책을 주어서 읽게 되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이원규님께서 이런 좋은 책을 펴내셨으니, 이원규 작가님께도 감사합니다.
이원규 작가의 "김산 평전"도 구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