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일본 도쿄 우에노 여행 4 -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gold iris 2018. 2. 1. 23:04

2017.11.02. 도쿄국립박물관의 정원을 둘러보고 동양관으로 갔습니다. 동양관의 맨 윗층에 "조선반도"실이 있고, 우리의 문화재들이 있습니다. 이곳에 바로 최충헌의 묘지명이 있었습니다. 또한 양산 부부총의 모든 출토물을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어서 전시중인지 찾아보았으나 부부총이라고 표현한 것은 없었습니다. "신라 6세기"라고만 기록한 누금장식 귀걸이가 있었습니다. 누금장식 귀걸이는 우리나라에도 중앙박물관(국보), 석당박물관(보물), 리움미술관에 1벌씩 3벌이 있을 뿐이지요.

다음에 효케이칸(표경관)을 보려고 했더니, 특별전을 하고 있어서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케이칸은 포기하고 법륭사 보물관으로 갔습니다. 어렸을때,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고구려의 담징이 그렸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법륭사의 보물관도 보고 싶었습니다. 건물이 마음에 듭니다.

점심을 일찍 간단하게 먹어서 5시가 안되었지만 시장해서 식사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쥬라쿠"라는 식당입니다.

그리고는 또 아메야요코초시장을 구경했습니다.

우에노 공원입구에 동판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센류우"라는 것과 관련이 있군요.

센류우[]

하이카이가 보급됨에 따라 17세기 중반부터 잡파이()라는 놀이 문학이 유행했다.

센류우는 그 잡파이 가운데 〈베고 싶기도 하고 베고 싶지 않기도 하다/りたくもあり りたくもなし〉라는 7·7조의 앞의 노래에 〈도둑을 잡고 보니 내 자식이구나/らへてみれば なり〉라는 5·7·5라는 붙임구가 독립한 것이다.

이것은 시작노래로 출제되는 77조의 노래에 예리한 순발력과 번득이는 재치로 575조 노래를 붙이는 것으로 이것을 마에쿠즈케(け)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독립한 것이다.

18세기 중반에는 마에쿠즈케의 선자()로 활약한 카라이 센류우(, 1718~1790)가 고른 노래를 고료오켕 아루베시()가 편집해서 『하이후우 야나기다루()』라고 이름붙여 간행했다. 이것이 호평을 얻어 속편이 간행되고 이것이 창시자의 이름을 본떠 이 형식의 문학을 센류우라고 부르게 되었다. 센류우는 혹쿠[, 하이쿠()]와는 달리 계절어()·키레지()에 제약이 없고 세태에 멋지게 파고들어 폭로[우가치(穿ち)]·웃음·풍자 등을 포함하고 있어서 경묘함을 즐기는 에도인들의 기질과 맞아서 널리 보급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센류우[川柳]